월요일부터 헤어 컷을 한다고 하던 아들이 오늘 출근 전 1시간 빨리 나갔는데 전화가 왔다.
어머니! 지금 코리안타운 인근에는 신호등도 안 되고 바버숍이 있는 건물도 전기가 다 나갔다고~ 그래서 허탕치고 돌아오는데 차 네비가 시킨 데로 빠른 길로 가다 보니 동네길로 들어섰고 그곳의 집들이 나무가 뽑히고 동네가 엉망이 되어 있다고~
흠~ 나는 토네이도가 뭔 줄도 몰랐을 때인 미국 이민 3-4년 차에 우리가 살던 동네에 어마어마한 토네이도가 왔었다. 그때 초 저학년이던 울 아들은 같은 동네에 사는 데이비드 집에 놀러 가 있었는데 오후에 아들 안부 확인차 전화를 했더니 데이비드 누나가 데이비드랑 울 아들 존은 자기 엄마랑 친척집에 놀러 갔다고 하면서 자기가 너무 놀랐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는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데이비드 바로 걸 건너 앞 집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아무튼 그날 울 부부는 암 껏도 모르고 저녁 8시 무렵 퇴근길에 동네길로 들어가려고 하니 동네 입구가 막혀 있었다. 경찰차들이 입구를 딱 막고 있으니 울 부부는 동네에 무슨 살인 사건이라도 났나 하고 부근의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한 편 보고 밤늦게 다시 동네 입구로 오니 아직도 경찰들이 있다가 아이디를 확인한 후에 동네에 사는 이들은 들어가게 했었다.
그런데 온 동네가 깜깜했고 울 집 도착을 해서 보니 불이 없어서 더듬더듬 대충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꺼진 냉장고 아래 물이 고여 있었고 바깥을 보니 울 집 뒷 나무담장이 넘어져 있었다.
세상에나 만상에나 토네이도로 인해 울 동네가 완전 난리가 나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가 사는 동네에 집들이 수백 채? 어쩌면 수천 채? 가 서 있는 대단지 동네이었는데 토네이도가 지나간 자리에 서 있던 수십 채의 집들이 지그재그로 다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어떤 집들은 반타작, 어떤 집들은 온타작, 어떤 집은 집터 위에 토일렛만 남아 있었다.
그것도 울 집이 있는 곳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길 하나 사이로 저쪽은 엉망이고 이쪽은 그나마 담장이 쓰러진 정도이었고~ 당시 알고 지내던 같은 동네에 사는 내 또래 한국친구는 아수라장이 된 동네를 돌아보고 온 후 너무 놀라서 한참 동안 토까지 했다고 한다. 자연의 재해가 너무나 무서운 줄을 미국에 와서 새삼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ㅜㅜ...
몸이 피곤해서 출근을 안 할까 하다가 그래도 몇 시간이라도 움직이다 오려고 정오 넘어서야 출근을 해서 꼼지락 거리며 일을 하고 있는데 오랜만에 지인 리한테 전화가 왔다. 리가 사는 동네도 전기가 다 나갔고 담장도 반이 쓰러졌다고 한다.
다행히 리는 작년 가을에 자기 옆집과 앞집이 발전기(generator) 설치하는 것을 보고 자기네도 함께 설치를 했었기에 이번에 전기를 사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한다. 전기가 있으면 당장에 냉장고 안에 음식 염려는 안 해도 되니 다행일 것이다. 발전기는 전기와 가스 공용이라고~
리는 말을 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고 잘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듣다 보면 지루하지가 않다. 그래서 나는 하염없이 통화를 못 했던 지난 두 달 동안의 리의 이야기를 별거별거 다 들을 수 있었다. 교회이야기, 선교이야기, 신학학사를 곧 받을 거란 이야기, 태권도 이야기, 목사 사모가 편찮으시다는 이야기 기타 등등~ 그 사이 나는 아직도 박스에 담겨서 섞여 있던 클립 온 이어링을 자리를 잡아 정리를 마쳤다.
전화 중에 자꾸만 전화가 끊겨서 나는 리의 전화가 잘못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울 아들이 내 차를 확인하려고 엔진을 틀었을 때 전화 연결이 내 차로 건너가 버리는 바람에 끊겼던 것이다. 엄마 차 확인차 오토 존에 다녀왔다고 했다.
퇴근 무렵 현이 언니를 화장실에 만났다. 언니 왈, 어제 토네이도로 언니네 집도 엉망이 되었다고 한다. 담장이 쓰러지고 이것저것 피해가 있었나 보다 가만 보니 한인타운 인근의 집들이 토네이도로 더 피해가 컸지 싶다.
당신이 도저히 출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먼 곳에서 바잉을 하로 왔다는 고객의 전화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출근을 했다면서~ 심란해하셨다. ㅜㅜ...
설거지를 끝내고 오니 가드 리카르도가 복도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고 도어를 열라고 설거지통도 곁에서 들어주었다. 시원한 두유 한 팩을 가드 손에 쥐어 주고 나왔다. 차를 타면서 주차장에 내 차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보니 아마도 내가 마지막으로 퇴근을 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퇴근길 오늘도 비가 나리고 있었는데 어제처럼 드센 비는 아니고 이슬비보다는 조금 더 굵은 비었고 운전하는 데는 별 불편을 못 느꼈지만 아직도 내 차는 엔진인지 뭔지 체크를 하라는 불이 켜져 있어서 불안했다. 아들이 오늘 엄마차를 오토존에 가서 보였는데 아무래도 다음 주 월요일에는 차수리점에 가서 보여야 할 것 같다고 한다.
오늘 저녁 식사는 뭘로 했을까 기억을 해 보니 뜨거운 물에 만 밥에 고사리나물과 돼지 수육 좀 남은 것과 새우젓 그리고 연어회 몇 조각에 아주 맛난 식사를 하였다. 울 아들은 소고기 스테이크 샌드위치를 저녁 식사로 만들어 먹겠다면서 운동 후에 에치 마트에서 내가 아들 먹으라고 사다 놓은 얇게 썬 소고기를 굽고 있었다.
엄마도 드실래요? 물어서 엄마는 너무 많이 먹었다며 노 땡큐~ 했다. 점심 식사는 울 아들 오늘도 맥버거를 먹길래 맥버거를 그렇게 자주 먹어도 돼? 물었더니 체중을 좀 올려야 해서 부러 요새 자주 먹고 있다고~
나의 점심으로는 카레라면이 있길래 뜨거운 물을 부어서 울 큰언니표 콩잎장아찌에 먹었는데 장아찌 얇은 한 잎을 띠어서 라면과 함께 먹으니 카레면을 사 왔다고 남편을 타박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맛있는 라면으로 변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딱 좋은 시간에 울 큰언니가 전화를 하셔서 나를 웃기셨다. 형부 언니 두 내외분께서 앉아 계시다가 막내가 해결해야 될 일을 끝내서 이제 더 이상 한국에 안 올려나 하는 생각을 하니 슬펐다면서 벌써 내가 그립다고 꼭 또다시 나오라고~ 하셨다.
또 언니 왈, 며칠 전에 연희동 성당에서 젊어 한 때 여 회장단으로 열심히 함께 활동했던 형님들 두 분을 언니가 신촌에 있는 식당으로 초대해 갈비 대접을 했는데 한 분은 80대 중반으로 지팡이를 집고 나오셨는데 두 분을 보니 언제 시간이 그렇게 흘러 버렸을까 하며 흐르는 세월이 야속했고 형님 한 분은 그때도 지금도 울 친정모친처럼 너무 멋쟁이라서 가지고 나온 지팡이마저도 화려하고 예뻤다고 한다. 두 분 다 외출을 거의 안 하시는데 언니의 대접이라 나왔다고 하시면서 너무너무 반가워하셨다는 말씀을 들려주셨고 갈비가 맛이 있어서 울 부부 생각을 더 하셨다며 다음에는 대접만 하려고 하지 말고 언니의 대접도 받고 가라고도 하셨다. ^_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