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오 동춘: 시조, 시인)
나의 아버지는 농부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흙 사랑에 사셨습니다.
새벽부터 거름을 져 냈습니다.
달을 지고 들어오시는 마음은 항상 밝았습니다.
띠엄바구 논 두 마지기!
일본까지 가시어 석탄 판 품으로 샀습니다.
땀을 동이동이 쏟아도 가난은 강물이었습니다.
지게가 밥이었습니다.
어깨가 뭉개지도록 식구들 입을 짊어졌습니다.
이집저집품팔러 다녔습니다.
그래도 쑥을 쪄 먹고 솔껍질을 씹어야 했습니다.
어깨는 날로 더 무거워졌습니다.
지리산 산판나무도 져 날랏습니다.
사철 이마에 구슬땀이 맺히고 등어리 흠뻑젖었습니다.
먼 산에서 하루 종일 해 온 나뭇짐을 장에 나가 팔았습니다.
그래도 쌀독은 늘 비어 있었습니다.
"새끼 서 발은 쓸 데 있어도 인간 백발은 쓸 데 없어!"
삶의 철학을 말씀하는 입엔거짓이 없었습니다.
짝짝 갈라 놓은 장작처럼 곧은 마음씨였습니다.
아침을 다 마치기 전에 다 배울 수 있는 한글조차 못 깨쳐 낫 놓고 ㄱ자도 몰랐습니다.
그래도 거울 같은 시냇물에 씻은 마음 천사였습니다.
배운 글 없고 익힌 기술 없어 대대로 물려받은 지게로
뼈빠지게 한평생 벌어도 오직 맑은 가난만이 벗이었습니다.
가슴 아픈 시련은 희뿌연 막걸리로 푸시고
구성진 민요로 잊어 가며 한평생 산 높고 물 맑고 인심 좋은 마천 산골에서
지게 인생만 사시다 가셨습니다.
가난과 진실만 아들에게 물려주고
늘 거름 쏟던 지리산 기슭의 밭언덕에 외로이흙을 덮고 주무십니다.
산새 소리 물 노래가 벗입니다.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한 나는 국어 선생입니다.
칠판에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얼을사랑하자 쓰고 외치는 홀소리 닿소리 선생입니다.
쪽박을 차도 자식을 가르쳐야 한다는
진주 하씨 어머니의 교육 정신으로 늦게나마 박사까지 따서
지금은 대학칠판 앞에 섰습니다.
이 대학 저 대학에 글 품팔이를 합니다.
아버지가 남의 집지게 품팔이를 해도
심으면 움 돋고 꽃 피어 열매 맺는 씨를 뿌리셨듯이
나도새싹들 가슴밭에 짚신 정신의 씨앗을 뿌립니다.
참삶, 뼈삶, 빛삶의 씨앗을 깊이깊이 심어 줍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나도 돈하고 거리가 멀게 살아 갑니다.
돈은 오다가도 날 보면 달아납니다.
그래도 가난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백만장자입니다.
벼슬도 부럽지 않습니다.
지렁이처럼 낮게 살아 갑니다.
고구마 넝쿨처럼 흙 사랑의 고랑을 기어 갑니다.
그러나 마음 속엔 결코 꺼지지 않는 신념의 등불이 탑니다.
"사람은 뼈 있게 살아 가야 한다."는
어머니 가르침이 뼈속 깊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길로 그저 기쁘게 살아 갑니다.
아버지 오 문달 님은 지게로 품팔아 살아 가셨고
아들 송골은 우리 한글로 품팔고 살아 갑니다.
누구는 도장 한 번 찍고도 으리으리한 집에 고급 승용차에 기대어 살지만
그것도 다 한때 사정없이 시들고 맙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웃는 자입니다.
한때의 호강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어떤 길로살았는가가 문제입니다.
개같이 산 것은 산 것이 아닙니다.
사람답게 살아 가야 합니다.
마지막 삶의 열매거 고와야 합니다.
빛이 나야 합니다.
나라 겨레에 빛이 돼야 합니다.
인류에게 조그만 보탬이라도 돼야 합니다.
결코 돈, 건력, 명예에 행복은 없습니다.
사람의 가치는 관뚜껑이 덮인 다음에 결정됩니다.
어떻게 살고 무슨 짓을 하다 죽을지
모르는 사람, 미리 동상 세우고 비석 세워야 다 헛것입니다.
다 무너집니다. 무너지고맙니다.
아부 아양 떨지 말고 삶의 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우리 집엔 기도가 흐릅니다.
삼백 예순 엿새 새벽 기도 부지런한 아내의 기도가뜨겁습니다.
맏아들의 기도가 우렁찹니다.
맏딸의 기도 소리가 뜨겁습니다.
막내아들 기도 소리도 씩씩합니다.
나는 하나님 사랑, 나라 겨레 사랑, 제자 사랑,
시문학 사랑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 하나님 축복과 사랑이 넘쳐 옵니다.
밝은 해가 떠 옵니다.
밝은 달이 비춰 옵니다.
우리 집에 하나님 축복과 사랑이 넘쳐 옵니다.
밝은 해가 떠 옵니다.
밝은 달이 비춰 옵니다.
별빛이 속삭입니다.
난 외롭지 않습니다.
기쁨니다.
예수님 피 흘린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닫습니다.
기쁨니다. 기쁨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기쁨에 차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날마다의 삶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하며 살아 가고 있습니다.
1993년 2, 5
성실하고 검소한 생활의 바탕으로 사시는 분은
법없이 살수 있는 분이라 봅니다.
그런분들이 많이 모인 사회 역시 모두가 바라는
좋은 사회, 크게는 국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감동적인 글입니다.
블친님 덕분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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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d rose 2017.03.28 04:48
윌리암 님도 제가 보기엔 그렇게 좋은 분 같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좋은 분들이 더 많기에
이렇게 우덜이 사는 세상이 유지가 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렇게 온라인 공간에서나마 서로 친구가 되어
공감하는 글들도 함께 나누어 읽을 수 있어서 저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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