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일기

월.02.03.2025. 오늘은 전화를 하는 날.

wild rose* 2025. 2. 5. 03:13

 

출근을 했더니 아들은 아빠 차 때문에 잠시 외출한다고 아까 침에 전화가 왔는데 아직 일이 안 끝났는지 스토어가 닫혀 있었다. 나 스토어 도착 후 울 아들도 금방 도착을 했는데 엄청 우울해 보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들이 엄청 피곤했나 보다. 아들이 우울할 때는 가능하면 말을 안 시키는 게 났다. 아들이랑 나랑은 성격이 비슷해서 그렇지 않으면 부딪친다. 시장했는지 웬디 버거 세트를 사 왔지 싶었다.

 

난 실버 정리를 지난주에 이어 계속하려고 했는데 주말을 지난 후 스토어를 보니 손을 봐야 할 곳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 역시도 월요병이 있는 데다가 아들마저도 우울해 보이니 정밀함을 요하는 실버는 손을 대지 못했고 최근에 없던 쇼케이스 두 개가 새로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좀 비싼 헤어 장신구들이 구석지로 들어가 있어서 그것들 자리를 새로 잡기 위해 와이어 벽에 걸린 아이디 홀더들을 우든 벽 쪽으로 옮기고 파티 장갑을 와이어 벽에 걸고 장갑이 걸린 랙에 헤어 장신구를 옮겨볼까 하고 그 일을 퇴근 시까지 했다.

 

그런데 그 일들은 바로 시작한 게 아니라 출근 후 친구 베로와 통화를 먼저 했고 그다음에 오랫동안 알고 지낸 미스터 리와도 통화를 했다. 내가 우울할 때 글을 써서 날 위로하듯이 아들이 우울해 보이니 나도 심난해져서 몸 대신 입이라도 놀리면서 날 위로하고 싶었나 보다.

 

똑똑한 베로는 처음에는 전화를 안 받았는데 얼마 후 금방 콜 백을 해서 전화기를 5-6년 사용하다 보니 셀폰이 썸띵 롱인지 소리를 못 들었다며 사과를 했다. 미스터 리는 아직도 현역에서 일을 그것도 기계를 만지는 일을 하기 때문에 가끔씩은 전화를 바로 끊어야 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꽤 오랫동안 서로 늙어 가는 설움을 이야기했다. 

 

베로는 크리스마스 직전에 통화를 했으니까 너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때 미처 마치지 못했던 소식을 주고받았고 미스터 리는 작년에 내가 쇼케이스 상판 유리를 깼을 때 같은 사이즈의 유리제작을 할 수 있나 해서 했던 통화를 마지막으로 한 후 거의 9개월만이 아닌가 싶었다. 미시즈 리는 플로리다 여동생에게 갔다가 어젯밤에 휴스턴에 왔는데 독감에 걸려 비리비리한다고 했다. 미시즈 리가 몸이 약해서 늘 걱정이지 싶다. 

 

갑자기 전화를 하게 된 이유는 순간순간 그이네들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전에는 거의 매일 하던 통화가 지금은 왜 행동으로 안 옮겨질까 나도 궁금했지만 그 궁금에 이유를 굳이 디테일하게 설명을 안 해도 대충 머릿속에서는 짐작이 된다. 가장 큰 이유는 흐르는 세월 때문에 더 해 가는 나이 탓이다.

 

똑같은 일을 해도 일이 굼뜨고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흥미롭지도 않다. 더구나 당장에 눈앞에 보이는 더 중요한 일들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충실하다 보니 그렇고 또 그것들을 안 할 때는 내 몸이 그냥 가만있으라고 하기 때문에 내 맘이 시키는 대로 살다 보니 주변 지인들에게도 형제자매들에게도 무심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왜 이리 시간마저도 빨리 가는지 뒤돌아 서면 1달이 3달이 9달이 훌쩍 지나가 있고는 한다.

 

그러자 울 남편이 일본여행을 위해 예약을 해 놨는데 일단 예약금을 각각 10만 원씩 울 부부 20만 원을 화요일까지 디파짓 해야 한다고 오늘 아침에야 말을 했다. 그리고 여행 떠나기 2주 전에 나머지 잔금인 두 명 여행경비 토털 170만 원 정도를 또 입금을 해야 한다는 이멜을 나는 오늘 아침에야 본 것이다.

 

여행을 정말 정말 싫어하는 나는 꼭 해야 하는 한국행을 하는 것도 벌써부터 심난한데 짧은 한국행 기간 중에 일본 여행까지 가자고 하니 내 맘이 더 심난해졌다. 한국행 비행기표는 작년 12월에 진즉에 샀다고 했고 일본여행은 최근까지 나 들으라고 나 부엌에서 출근 준비할 때, 또 퇴근 시 잠깐 손을 씻을 때인 짧은 시간에 중간중간 흘렸었다. 자기는 일본을 안 가 봤으니 꼭 가 봐야겠다면서~ 일본뿐만이 아니라 울 부부는 동남아 쪽은 안 가봤다. 그렇지만 난 전혀 그 나라들이 궁금하지도 않다.

 

그런데 디파짓을 큰언니께 부탁을 드리라고 한다. 미국 전화로는 한국통장에 돈이 있다고 해도 온라인 뱅킹을 할 수도 없고 또 미국 은행에서 와이어로 부친다고 하면 또 엑스트라 시간도 내어야 하는 등 그 과정이 복잡하다. 더구나 오늘 한국이 영하 13도에 체감온도는 그 보다 더 낮다고 하는데 팔순 가까이 되는 언니가 보기는 통통해서 부잣집 마님처럼 보여도 걸음걸이도 늦고 양쪽 손이 다 떨림 증상으로 불편한데 어찌 오늘처럼 심한 추위에 언니한테 부탁을 하겠는가?

 

짜증이 확 났다. 그렇지만 아무리 가족사이라도 내가 겪어본 봐로는 잠시잠깐 내는 짜증의 여파가 상당히 기분이 나쁘기 때문에 표는 내지 않았고 또 남편이 내 곁에서 자꾸 이런저런 말을 시키면 내가 더 심난해져서 알아서 하겠다고 했었다. 그때가 한국 시간으론 화요일이 막 시작되는 영시 무렵이라서 아직은 시간이 있기에 출근을 했고 또 스토어에서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퇴근길 운전 중에 다시 생각이 났다.

 

그래서 누구에게 부탁을 할까 생각하다가 친구 태문이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그때가 한국은 오전 9시가 좀 넘었을 무렵이었다. 마침 친구는 전화를 받았고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알아먹는 친구라 두 말도 안 하고 알았다고 하며 네가 설명하려면 힘드니 여행사 전번하고 담당자 이름만 주면 자기가 직접 여행사 직원하고 통화를 할 것이라고 한다.

 

태문이는 친구들과 선약이 있어서 지금 자기 차까지 걷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미국 시간으로 화요일 새벽 2시 무렵에 여행사에서 태문이가 받은 디파짓 완료가 되었다는 메시지를 나에게 보내왔다. 난 그때 막 베드에 드려고 할 때라서 바로 태문이랑 카톡연결을 했고 새벽 3시 48분까지 통화를 했다. 친구는 4월에 발칸반도로 교회 자매들과 14박행 예약이 되어 있고 또 얼마 뒤 학교 친구들과 가는 여행이 또 잡혀 있다고 한다.

 

내가 그랬다. 여행을 싫어하는 나와 여행을 좋아하는 네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을까 했더니? 태문이 딸 은정이도, 고교 친구들도 태문이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흠~ 내가 봐도 태문이랑은 취미도 성격도 틀리다. 그런데 친구가 된 이유는 친구가 내게 더 정성을 쏟았을 것이다. 왜냐면 난 어려서부터 나 스스로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결코 자랑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랬다.

 

내 주변에 친한 친구들로 남아 있는 한국친구, 미국친구들만 봐도 그 친구들이 집으로, 스토어로 찾아 주어서 내가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내가 또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정으로 갚아 주다 보니 절친이 된 케이스가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친구들 모두가 하나같이 마당발이고 또 나름 한똑똑 한 친구들이라서 덕분에 40년을 미국에서 산 내가 또 다른 고친, 대친들과 아직까지도 연결을 할 수 있기에 지금 생각하니 나의 몇 베프들에게 오늘따라 더 감사한 맘이 든다.

 

친구가 당장에 복잡한 나의 일을 줄여 주었어도 아직도 내 맘은 남편에 대한 짜증이 남아서 친구에게 하소연 비슷한 말을 했다. 매일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는 울 남편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살아생전 이 세상을 방락객처럼 평생을 떠 돌다가 길거리에서 죽었을 거라고~

 

친구는 약사인 남편을 도와 약국을 경영하다가 15년 전에 잘 되는 약국을 넘기고 그 후부터 남편이 멀리 떠나기 전까지 이곳저곳 여행을 아주 많이 다녔다고 한다. 남편 사후에도 여행을 많이 다녔고 작년에도 내가 알기로 남프랑스, 장가계, 다낭은 물론이요 친구들과 한국의 좋은 곳은 수시로 다니고 있는 걸로 안다. 나도 한국에 있었다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녔을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순간이었다.

 

대신에 나 결혼 전에는 초등 시절부터 울 부친께서 매 년 여름마다 몇 박씩이라도 바닷가를 안 데리고 간 해가 없이 꼭 다녔던 기억이 나고 나의 대학 전공이 또 움직이며 여행 비슷하게 다녀야 했기에 설악산, 동해안 일주, 인천, 서울 인근 경기에 있는 크고 작은 도시 등을 다니다가 결혼해서 미국에 오니 또 남편이 어느 날은 뜬금없이 금요일 급 티켓을 끊어 이틀 뒤인 일요일에 하와이행 비행기를 탔고 또 어느 날을 말도 없이 서, 북, 동유럽을 다녀오라고 했다. 더구나 도매 장사라고 하다 보니 해마다 가기 싫어도 두 번씩은 비행기를 타고 있다.

 

참! 하이디도 한동안 서로 연락을 안 했는데 오늘 오후 4시 무렵에 전화가 와서 네 생일이 돌아오는 데 어떻게 할까? 하고 묻는다. 그래서 생각해 보자고 했다. 잘 있었냐고 물으니 도나의 핸디캡 아들을 4일 동안 돌봐 주었고 일요일 어제 아침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친구 도나는 루이지애나로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흠~ 나도 처음에는 그 일이 하이디를 힘들게 할까 봐 염려가 되었는데 하이디는 그런다. 그 일을 즐기지는 않지만 핸디캡 아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가 잠시라도 자기 삶을 즐길 수 있게 돕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니 하이디 같은 성품도 타고났지 싶어 오늘은 하이디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