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惠麟 未公開 隨想(전혜린 미공개 수상) - 밤이 깊었습니다(1)
전혜린(田惠麟 / 1934~1965, 수필가·번역문학가)
삶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은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추악하고 권태로운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베일을 씌우고
약간의 안개로 가리고 삶을 볼 때 삶은 아름다워지고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무엇으로 변형됩니다. 덜 냉혹하게 덜 권태롭게
느껴집니다. 저녁 때 푸른 어둠 속을 형광등이 일제히 켜지는 시간부터 神秘(신비)는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둠은 奇蹟(기적)을 낳습니다. 어둠속에서 우연히 만난 옛날에 알던 사람과 우리는 곧 核心(핵심)에 와닿는 對話(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낮은 赤裸裸(적나라)한 日光(일광)으로 모든 浪漫(낭만)을 박탈해버리는데 比(비)해서 밤은 우리를 꿈속같이
막연하고 不透明(불투명)하게 부드러운 낭만으로 감싸줍니다.
우리들 人間(인간)은 너무나 不完全(불완전)하기 때문에 밤이
切實(절실)히 必要(필요)합니다. 자기가 대낮이라고 외치고 ‘빛’이기만 하고 어둠일 줄을 모르는 슬픔을 노래한
니체(Nietzsche)보다 우리는 “오 밤이여, 나는 또 코카인을 먹었다!” 라고 詩(시)를 쓴 벤(Benn)에 더
同情(동정)이 갑니다. 그만큼 니체의 時代(시대)보다 現代(현대)는 生活(생활)이 복잡해지고 낮의 부담이 더 무거워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신비화하기 위해서, 또 日常(일상) 생활의 기계적인 궤도가 주는 피로에서 놓여나기 위해서 또 정말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기 위해서 밤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밤은 우리를 포근히 안아줍니다. 모든 괴로운 사람에게도 다 밤은 부드러운
이불이 되어주고 감싸줍니다. 마치 우리는 어머니의 胎(태) 안에 있는 것 같은, 完全(완전)히 모순 없는 內在(내재)의
意識(의식)이 주는 하모니를 心身(심신)에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몸을 밤에 내어 맡깁니다. 孤獨(고독)하게
어둠속에 누워있을 때 우리는 事物(사물)이 突然(돌연) 그의 日常性(일상성)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온갖 물체가
입체성을 잃고 마치 流動體(유동체)처럼 우리의 意識(의식) 속에 흘러들어오고 外界(외계)와 우리가 奇妙(기묘)한 새로운
關係(관계)에 서게 됩니다. 낮동안에는 觀察(관찰)이나 評價(평가)의 對象(대상)이었던 對象(대상)으로서의 외계가 不時(불시)에 그
限界(한계)를 넘고 우리와 ‘너의 관계’ 즉 아무런 제3조건이 개입할 수 없는 단 둘만의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외계와 완전히
合一(합일)될 수 있는 완전한 瞬間(순간)을 우리는 그때 體驗(체험)하게 됩니다.
여태까지 不可能(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모든 일이 不時(불시)에 너무나 當然(당연)하고 自然(자연)스러운 일로 생각됩니다. 우리는 일상성의 테두리밖에 있는 것이니까…. 그때 우리는 정말로 우리들 自身(자신)일 수가 있습니다. 어둠보다 더 짙은 것, 더 부드러운 것 그리고 더 純粹(순수)한 것이 있을까? 모든 조잡과 不調和(부조화)와 추악의 原色(원색)을 抽象(추상)해낸 검은 빛, 누비아 女人(여인)의 몸의 빛과 같이 매끈한 暗黑(암흑)이 지금 훈훈하게 우리를 안고 있습니다.
어둠에 몸을 맡기십시오. 밤의 품안에 안기십시오. 낮의 생활의 소용돌이가 남겨놓은 原色(원색) 자갈돌을 어둠으로 덮으십시오. 暗黑(암흑)을 포옹하십시오. 순수를 渴求(갈구)하십시오.
우리의 生(생)은 투쟁과 갈등의 끊임없는 反目(반목)의 持續狀態(지속상태)입니다. 꿈과 現實(현실), 藝術(예술)과 生活(생활),
生(생)과 死(사), 이런 反對(반대) 槪念(개념)들이 우리의 生(생)의 瞬間瞬間(순간순간)을 갈등과 決斷(결단)으로 몰아넣고
우리를 緊張(긴장)시킵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이 우리의 意識(의식)의 결단없이는 흘러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의 總體(총체)가 우리의 생이며
우리는 우리의 생에 ‘責任(책임)’이라는 무거운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自由(자유)’라는 날개가 우리의 등에 달려 있는
것도 우리의 발에 묶인 쇠사슬의 對價(대가)인 것이니 結局(결국) 우리는 一生(일생)동안 꿈속에서밖에는 날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순과 갈등, 그리움과 환멸의 不連續線(불연속선)인 생에 대해서 죽음은 休息(휴식)과 모든 투쟁의 종언을 뜻합니다. 생이
偉大(위대)한 대낮이라면 死(사)는 밤일 것입니다.
모든 모순과 분규를 일단 그대로 받아들인채 포근히 감싸 덮고 마는 포섭력과 유화력의 소유자가 밤입니다. 괴로운 사람일수록 밤을
사랑합니다.
햄릿도 “죽는다는 것은 잘자는 것…. 그 以外(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밤을 渴求(갈구)해왔고
종래는 덴마크王國(왕국)의 기나긴 밤 ― 깨어남 없는 잠을 가져오는 永遠(영원)의 밤을 빚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는 모든 생각하는
사람, 괴로워하는 사람처럼 밤의 人間(인간)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낮보다는 밤에 생보다는 死(사)에 그의 關心(관심)이 가
있던 人間(인간)이었습니다.
밤은 그러니까 일상성으로부터의 脫皮(탈피)에서부터 生命(생명)으로부터의 超絶(초절)로까지
昇華(승화)될 수 있는 힘의 所有者(소유자)이기도 한 것입니다. 괴로울 때 우리는 밤을 바랍니다. 밤을 그립니다. 그리고 밤이
되고저 우리를 파괴해버리는 일까지도 있는 것입니다.
□ 편집을 마치고
本誌(본지) 춤 創刊(창간) 10년 전인 1966년 단 한 번으로 끝나버린 舞踊評論 同人誌(무용평론 동인지) 「춤」에 보내졌던 글
중 田惠麟(전혜린) 씨의 未公開(미공개) 隨想(수상)과 斷想(단상)을 싣는다. 이런 原稿(원고)들은 續刊(속간)되지 못하면서
오늘까지 36년 동안 묻혀 있었다.
그때 책의 편집후기
「… 책의 발간이 늦어져 田惠麟 씨는 그동안 故人(고인)이 되었다…」 로 되어있다. 어쨌든 이 天才(천재)의 글이 그의 遺稿集(유고집)에 追加(추가) 될 수 있어서 기쁘다. (兮)
*) 1966년 무용평론 동인지 「춤」지에 보내졌으나 (속간되지 못해) 게재되지못한채 묻혔다가 36년만인 2002년 본지 4월호에 실렸던 전혜린 씨의 미공개 수상 총 4편을, 본지 통권 500호를 기념해 4회에 걸쳐 다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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