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일기

화.01.29.2025. 잡생각을 많이 했던 화요일

wild rose* 2025. 1. 30. 03:40

 

남편 출근 했다가 샘스와 월마트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사 왔지 싶다. 계란 값이 비싸고 그나마 살 수 있는 양이 2 패키지 리밋이라고 한다.

 

오늘도 출근이 많이 늦었다. 출근 후 일을 조금 했는데 갑자기 몸 컨디션이 별로이라서 스툴에 앉아야 했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앉은 김에 점심을 먹었고 그때가 이미 오후 5시도 넘었다. 찬은 남편이 궈준 기다란 소시지 하나에 내가 끓인 소양시래기탕에 밥 조금이었는데 국과 밥만 먹어도 훌륭했는데 남편표 소시지까지 있어서 짭짤했지만 그냥 소시지 맛으로 나름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한다.

 

점심이 조금 늦었는데 이유는 남편이 또 쉬플리 도넛  6피스를 사다 놔서 아까침에 시장기가 들었을 때 밥 먹기 귀찮아서 2피스 도넛으로 대신했는데 아들이 3피스를 먹었고 남은 1 피스는 퇴근 시 가져왔다.

 

도넛을 이야기하니 갑자기 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생각이 난다. 나 아직 중고등(?) 시절이었던가 아무튼 한동안 안 나왔던 엘비스가 다시 나온다고 했고 하와이(?)인가에서 콘서트를 할 때 미국여자들이 좋아 난리를 치던 모습을 당시 티브이에서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당시 뉴스에서 콘서트 일부를 봤는지 아니면 콘서트 전체 방송이었는지? 까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 당시 어떤 잡지에서 읽었던 기사에서 그이가 너무 살이 쪄서 살을 빼려고 식단을 조절을 했는데 허기를 달래려고 눠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서 허공에 대고 도넛 도넛~~~~ 도넛을 부르며 절규하듯이 도넛이 먹고 싶다고 했다고 적혀 있었다. 또 다른 기사는이 변비가 심했다고 한다. 신이 주신 외모를 타고나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닌 도 엄청난 인기 뒤에는 그도 인간이었기에 가질 수 있는 이런저런 고충이 있어서 참 힘이 들었겠구나 하고 도넛을 먹다가 오늘은 갑자기 너무 빨리 떠나버린 미 유명 가수이었던 엘비스 생각을 했다.

 

엘비스 광팬이었던 조 언니의 댁에는의 굿스로 가득 채워진 차이나 캐비닛이 있다. 나 어려서도 울 집에 전축과 엘피판이 많이 있어서 당시 초등시절이라 영어를 몰라 팝송의 가사가 뭔 뜻인 줄도 모른 채 멜로디가 좋아서 자주 듣고 따라 불렀던 팝 송들이 몇 곡 기억이 나는데 그중에 엘비스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 올 포 더 러브 앤 어 걸(가수 이름 기억이 안 남) & 폴 앵커의 "파파" & 아이 네버 네버 렛 유 고 아이 러브 유 오 소 머치!라는 가사를 가진 곡인데 지금 내 머리가 석두가 되어 갑자기 제목이 생각이 안 난다. 아 생각이 났다.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포 미"라는 노래도 있었고 또 톰 존스"그린그린 그래스 오브 홈"도 나 초 중 때 자주 들었던 곡 중에 한 곡이었다.

 

영어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이 나는 기억은 초 6학년  졸업하자마자 울 부모님 막내딸 공부를 좀 더 잘 시켜 보자 하고 여 의대생을 소개받아 영어 기초를 배우게 했는데 중 입학하자마자 영어 알파벳을 배웠던 영어 시간에 나는 이미 다른 친구들보다 너무 많이 알고 있었고 어린 내 맘에는 선생님 보다 더 영어를 잘한 것 같았다. 그런데 노는 게 더 좋다 보니 하교 후 따로 공부를 더 하는 게 싫어서 3개월 정도 후에 과외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었다. 그 후 고등 졸업 때까지 그때 3개월 배운 영어 실력과 단어로 그나마 과락을 하지 않고 겨우 졸업을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어공부를 정말 하기 싫어했는데 나는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다.

 

하긴 내 두 남동생들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손위 형 누나들이 영단어를 가르쳐 주기 시작해서 꽤 많은 영단어를 배워 알고 대답하곤 했었다. 나 역시도 곁에서 함께 들었기에 쉬운 단어들은 알파벳으로 안 게 아니라 그냥 소리로 들어 알고 있었다.

 

당시 광주에 미영사관이 있었는데 영사관 직원의 아이 중에 내 남동생과 동갑인 아이가 있었고 울 큰언니의 친구가 알바로 그 아이 베비시터를 했었나 보다. 어느 한 날은 그녀가 유모차에 그 미국애를 태우고 울 집에도 놀러 왔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울 집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광주 시장 관사도 있었고 미 영사관저도 있었으며 당시 한옥으로 멋지게 지어진 동명 호텔도 있었다. 당시 박통이 광주에서 머무를 때는 그 동명 호텔에 머무른 적이 있었고 그 일대가 경호 차량들이 주욱 둘러서 경호를 하면서 그날밤에는 호텔이 있던 앞 길은 일반 행인의 통행을 제지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그 호텔이 개인에게 팔렸는데 그 호텔을 구입한 이가 당시 막 설립된 광주은행 투자자 중에 한 분이 샀는데 그 부인이 어린 내가 봐도 참 예쁘셨고 교양이 있게 느껴졌는데 울 엄마가 집으로 초대하는 식사 모임에도 몇 번 오셨고 또 울 집에서 특별식을 하는 날에는 엄마가 쟁반에 음식을 담아서 주면 배달을 하는 심부름을 한 번 한 기억도 난다. 그때 미시즈 손이 나에게 수고했다며 선물로 지폐 한 장도 주셨다. 당시 울 셋째 언니가 대학을 갔을 때고 나랑 6세 차이가 나는 언니인데 학년은 5학년 차이가 나니 아마도 나 중 1-2 때이었지 싶다. 기억을 하다 보면 또 다른 기억이 꼬리를 물고 계속 나와서 300페이지 정도의 스토리 북 1권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영어 이야기를 쓰다 보니 수학 생각도 난다. 중 2 때 인수분해가 도대체 이해가 안 되어서 중 2 처음 수학 시험에서 완전 망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별로 공부에 서로 멀지 않은 곳에서 살던 친구 몇 명이 수학 과외를 받게 되었는데 시작은 중 2 때이었는데 중 3 때까지 꽤 오래 과외를 받았을 것이다. 과외를 하게 된 이유는 친구 한 명이 세 들어 사는 집주인이 당시 남 중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이었기 때문이었다.

 

공부하기 싫어했던 나도 그 과외는 싫어하지 않고 내 걸음으로 당시 15분 정도 가야 했던 과외수업 시간을 꽤 부지런히 다녔고 나의 수학 실력은 고등 졸업 때까지 꽤 좋아서 고교 입학시험에서도 수학에서 거의 만점을 받았고 대학 예비고사에서도 수학성적은 좋았다고 생각을 한다.

 

지금도 그 선생님 모습은 생각이 나는데 성함은 생각이 안 난다. 참 좋은 성품과 인품을 가진 훌륭한 교사이었다는 느낌이 들고 수학을 이해하기 쉽게 잘 가르쳐 줘서 감사한 맘은 영원할 것 같다. 울 아들 7학년 까지도 너무 어렵지 않은 수학 문제를 풀어 아들을 놀라게 했는데 지금은 배운 게 다 어디로 숨어 버렸을까 할 정도로 암 껏도 생각이 안 난다.

 

그러면 나의 국어 실력은? 선생님들이 나에게 새 단원이 나오면 읽기를 자주 시켰다. 내가 글을 잘 읽었나 보다. 그런데 이해도 잘해서 공부를 전혀 안 해도 국어 시험이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렇담 한문은? 나 초등 4학년부터 교과서에 쉬운 한문 몇 개씩 나오다가 바로 그다음 해인 초 5학년부터는 나라법이 바뀌어서 국어 교과서에 한문이 깡그리 다 없어졌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한문을 학창 시절 내내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다가 고 2 때인가 딱 1년 정도 한문 수업 시간이 일주일에 한 시간씩인가 따로 있었다. 물론 한문 시간이 나에게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다.

 

굳이 한문을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울 증조할아버지께서 해남의 고향마을에서 서당 훈장님이셨다고 한다. 그래서 울 부친께서는 어려서부터 객지로 나오기 전까지 서당에서 꾸준히 한문을 배우셨기에 기일상에 올릴 지방도 먹을 갈아 손수 다 쓰셨고 또 나 어려서 신문을 읽다가 모르는 한문은 부친께서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당시 일간 신문에 꽤 많은 한문이 실렸는데 읽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면접시험에서 한문 단어 딱 하나를 물어봤는데 일절(一切)이라는 단어이었다. 다행히 나는 쉽다고 생각해서 대답을 잘했는데 그 뜻이 뭐냐고 까지 물어봐서 식당 앞에 적힌 안주 일절 할 때 쓰는 단어라고 했었다. 지금에야 새삼 확인을 하니 그 답이 틀렸다고 한다. 안주 일체가 맞다고 사전에 나온다.  일절과 일체가 뜻은 다르지만 글씨는 같은 한문으로 쓰나 보다. 그래도 뭐 대학에 합격을 했으니 다행이다.

 

또 아이큐 검사이었는지 같은 교수님께서 이상한 질문을 했는데 할아버지 딸의 아들의 외삼촌에 딸이 누구냐는 식으로 친척 관계를 복잡하게 꼬아서 물어봤는데 친척이 유난히 많았던 나는 머릿속에서 직접 그 상대를 비교하며 예상을 했는데 그 답이 바로 나라는 계산이 나와서 대답을 했는데 그 답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 대답 후 교수님께서 지었던 미소는 생각이 난다. 아무튼 당시 내가 갔던 대학에서는 그렇게 상식이 있는 선에서 질문을 받았었다.

 

그런데 나 고등 친구의 면접 이야기를 들으니 당시 지방 유명 국립대학 수학과에 지원했던 숙이는 면접을 받을 학생들 몇 명씩이 면접실 안으로 들어가서 윗도리를 벗으라고 한 후 면접관들 앞에서 앞으로 뒤로 걷게 했단 소리를 듣고 그게 사실인가 참으로 의아했던 기억도 난다. 그게 아마도 신체검사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고친 숙이는 고교에서 수학교사로 근무하다 지금은 은퇴를 했을 것이다.)

 

당시 나는 신체검사 시에 같은 대학이 운영하던 종합 병원에 가서 키 몸무게 등을 첵 업했던 기억은 확실히 나는데 그 외에 어떤 검사까지 했는지는 기억이 아스레 하지만 단체로 윗옷을 홀라당 다 벗고 했던 그런 검사는 확실히 없었다. 지금도 친구 면접 이야기를 상상을 하니 내가 오히려 부끄러지려 한다. ㅜㅜ...

 

뭔 소리를 적다가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졌을 까? 흠. 아 맞다. 도넛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졌다. 아무튼 아들 퇴근 전에 토요일부터 밀린 커피잔 4-5개와 아들이 사용한 레인지 접시 3개를 설거지를 했고 아들 퇴근 후에 30분 정도를 더 머물면서 팔찌 정리를 조금 더 하다가 퇴근을 했다.

 

퇴근하려고 막 차에 탔다가 갑자기 오늘이 한국의 구정날임을 기억이 났다. 그래서 울 큰언니께 메시지를 넣었다. 집에 계시냐고? 큰언니는 큰아들에게 차례며 기일날을 넘겨준 후에도 당신 몸이 괜찮을 때는 큰 음식 몇 가지를 준비해 다니시다가 수전증이 생긴 뒤로는 최근 몇 년 동안은 형부만 다니시고 언니는 집에 머무름을 내가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큰손자가 캐나다에서 와서 혹 예외로 참석하셨나 궁금했었다.

 

잠시 후 아직도 운전 중에 큰언니의 전화를 받았고 역시나 혼자 계신다고 하셨다. 어제 장남과 두 시누이가 언니를 위해 구정설 인사차 집에 다니로 와서 언니 나름 음식을 해서 먹이고 또 인사를 받았다고 하시면서~ 언니랑 귀가 후까지도 거의 1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

 

아무튼 나의 오늘은 표면상으로는 출근을 해서 일을 했지만 일의 속력은 전혀 내지 못한 채 일을 하다가 말았다. 저녁 식사는 생각이 없어서 안 먹다가 밤 9시가 넘어서 울 집 냉장고 뷔페에서 접시 가득 차려와 엄청 맛있게 먹었다. 특히 이번 배추김치는 백김치 4촌처럼 그렇게 담가졌지만 맛은 괜찮아서 큰 배추 이파리 3개를 크런치 크런치 하고 맛있게 씹어 먹었다.

 

 

울 아들도 피곤한지 일찍 잠이 들었다가 밤 10시 무렵에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엄마 방으로 와서 베드에 눕길래 웬만해선 아프단 소리를 안 하는 아들인데 허리 바로 위 부분인 마슬이 또 아프지 싶어서 그 부위를 눌러 눌러 주었더니 감사해하며 아빠방으로 가는 것을 보니 또 아빠를 위해 다리 마사지를 잠시 해 주는 것 같았다.

 

난 초저녁에는 졸려서 일찍 베드에 드려고 했는데 다시 졸림이 사라져서 새벽 2시 무렵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베드에 들었다.

 

나의 오늘은, 몸으로 하는 일은 게을렀는데 머리에서 잡생각만 엄청 많이 했지 싶다. 울 남편 방에서도 꽤 늦은 시간까지 티브이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