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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철 시인의 시 몇 편

wild rose* 2020. 3. 31. 01:34

 

나기철 시인의 시 몇 편

 

엄마    나기철

아내가 집에 있다

아파트 문

열기 전

걸음이 빨라진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있는 집에

올 때처럼

 

 

날 가져가!

축하할 두 분에게 드릴
책 두권 사온 후

내일 장미꽃 하나씩 사서
끼워 드려야지,

하며 밖엘 나가는데
담에 고갤 내민
장미 단 두 송이

새글

 

오후에

 

다시

내가 하지 않은 밥을

먹는다

 

이남에서

오랜 시간

어머니

누구에게 의지하셨나

 
 
반전 反轉

 

 "아껴 줍서예!"

누가 한 말 한 마디

 

뼈대 굵고

덩치 큰

아내가

갑자기 작고 가냘퍼진다

 

시월

 

수능이 얼마 안 남은

팔공산 갯바위

 

사십 대 후반쯤

여자 셋이

간곡히

빌고 있다

 

삼십 년 전

그들의 엄마가

그랬듯이

 

 


[ 나기철 시인 약력 ] - 펌

 

 나기철 시인

 

*1953년 서울 출생. 열두 살 때부터 제주에서 살고 있음.

*1987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섬들의 오랜 꿈』『남양여인숙』『뭉게구름을 뭉개고』『올레 끝』.『지금도 낭낭히』

*신성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퇴직

* 제주철학 사랑방 회장

 

 

*나기철 시집 지금도 낭낭히”(서정시학, 2018.4.16.) 나기철 시인은 서울 출생이지만, 중학생 때부터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북한 신안주 출신으로 181.4후퇴 때 월남해서 10살 위 이북 남자와 결혼했다. 부인은 제주 토박이다. 그의 시의 주된 정서는 그리움, 안쓰러움, 감탄이다. 한 장면, 어떤 사연의 한마디를 다루기도 하지만, 과거와 현재를 함께 다루기도 한다. 시가 대체로 아주 짧지만, 개인과 가족과 민족적인 서사를 품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금방 읽히지만 오래, 넓게 생각하면 가슴을 울리는 시들이다. [백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