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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증 따기 - 최용현(수필가)

wild rose* 2018. 11. 30. 03:09

 

운전면허증 따기

 

최용현(수필가) 

 

  

40대 중반에 들어선 엄태성 변호사가 운전면허증을 따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작년 가을에 그의 아내가 운전면허 첫 시험에 합격한 때부터였다. ‘집에서 살림만 하던 여자가 하루 만에 면허증을 따오는 걸 보면 운전면허 따는 거 별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내의 운전솜씨는 도무지 미덥지가 않았다. 아파트에서 운전연습을 하다가 화단 턱으로 올라가지 않나, 길 양쪽으로 주차해놓은 차들 사이로 지나가다가 백미러를 건드리지 않나.

 

   엄 변호사가 그 동안 차 때문에 크게 불편한 것은 없었다. 운전기사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과후의 사적인 만남에는 택시를 이용해야 했고, 명절 때는 용케 표를 구해 열차를 타고 고향에 간 적도 있었지만 번번이 표를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결국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지난 2월 어느 날, 변호사 사무실과 가까운 운전학원에 등록을 했다. 3월말에 첫 시험이 있었다. 이론은 책을 사서 혼자 틈틈이 공부를 하기로 했고 실기는 부지런히 학원에 다니면서 익히기로 했다.

 

   필기시험은 자신이 있었으나 실기시험이 문제였다. 학원조교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해보았지만 차는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시동은 자꾸만 꺼졌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었다. 30대 초반의 젊은 조교는 노골적으로 구박을 했다.

 

   “클러치를 살짝 떼야 시동이 안 꺼진다니까요.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소? 운전은 아이큐 70이면 할 수 있는 거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머리가 그렇게 안 돌아가요?”

 

   차마 변호사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 마디 하려다 꾹 참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이큐가 150이 넘는, 자타가 인정하는 수재였다.

 

   그는 어린 시절을 지독한 가난 속에 보냈다. 그의 두 형은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남의 논 소작(小作)을 하고 있었고, 그도 초등학교를 마치자마자 형들처럼 소작을 해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두뇌와 재능을 발견한 담임선생님이 여러 번 집으로 찾아와 부모를 설득한 끝에 겨우 읍내에 있는 M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승승장구였다. M중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부산의 명문 P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갔고, 3년 후 S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대학 4학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었다. 엘리트코스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밟지 않았는가.

 

   그는 아직 시험에서 떨어져 본 적이 없었다. ‘엄 판사라고 하면 그의 고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되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3년 전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심한 위궤양을 앓아 위장 일부를 잘라 내는 대수술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결국, 그는 건강 때문에 법관직을 포기하고 재작년에 변호사로 새 출발했다. 이제 건강도 거의 회복되어 평온한 일상을 되찾은 터였다. 운전면허 시험을 불과 닷새 앞두고 코스 연습을 마쳤다. 곧바로 주행연습에 들어갔다. 언덕길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돌발 정지 등은 아무리해도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드디어 시험 날이 왔다.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오전 필기시험은 두 문제가 틀려서 96점을 받았다. 그날 응시자 150여 명 중 2등이었다. 시험 감독관이 3등까지는 이름을 불러주어 우렁찬 박수까지 받았다.

 

   오후에는 코스시험이었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퍼붓고 있었다. 곳곳에 물이 고여 시험장은 한마디로 엉망이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차에 올랐다. 굴절코스와 S자 코스는 무난히 통과했으나, T자 코스로 가다가 차가 물웅덩이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바람에 불합격되고 말았다.

 

   다시 재시험 접수를 했다. 시험일은 4월말이었다. 그 동안 시간제 티켓을 끊어 부지런히 학원에서 연습을 했다. 이번에는 코스시험은 통과했으나 주행시험에서 불합격이었다. 사무실 직원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집에 오니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딸까지 또 떨어졌어? 엄마는 한 번 만에 붙었는데.’ 하며 핀잔을 주었다.

 

   다음  6월초 시험 때는 일찍 학원에 가서 주행연습을 한 시간 하고 시험장에 갔다. 약국에서 청심환을 한 알 사먹었다. 언덕길에서 섰다가 미끄러지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그날 아침에 학원조교가 일러준 대로 서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기로 했다. 다른 데서 점수를 따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은 과감하게 해야지.

 

   언덕길을 그냥 휙 올라갔다. 그런데 내리막길에서 코너를 돌다가 그만 옆모서리에 쾅- 하고 부딪치고 말았다. 코너를 돌면서 감겨진 핸들을 다시 풀어야 하는데 제대로 풀지를 않았던 것이다. , 정말 나는 아이큐 70도 안 되는 무능한 사람인가.

 

   시험장 직원들과 응시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앞 범퍼 일부가 부서지고 한 쪽 전조등이 깨졌다. 수리비용으로 40만 원을 물어주고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고물차에다 안전시설 미비 등 법적으로 따지면 더 적게 물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선 창피했고, 그것 땜에 왔다갔다 시간낭비하기가 싫어서 그곳에서 요구하는 수리비를 모두 주었던 것이다.

 

   겨울에 시작한 운전,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끝이 나지 않았다. 다음시험은 7월말이었다. 이제 그 학원에는 눈에 익은 사람이 많아 창피해서 갈 수가 없었다. 집 주위에 있는 다른 학원에서 주행연습을 했다.

 

   7월 시험에서도 떨어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시간초과란다. 이제 응시원서에는 인지(印紙)를 붙일 자리가 없었다. 접수창구에 물어보니 원서 뒷면에다 붙이란다. 다음 시험은 9월이었다. 마음 한 구석에 오기가 발동하기도 했지만 이젠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다. 마음을 비우자. 올해 안에는 붙겠지.

 

   9월 시험 날, 그날은 연습도 하지 않고 갔지만 전처럼 초조하지는 않았다. 벌써 다섯 번째 이 면허시험장에 온 것이다. 차례가 되자, 담담하게 차에 올랐다. 돌발에는 제대로 섰는지 자신이 없었으나 언덕에서는 미끄러지지 않은 것 같았다. 요철구간을 지나 천천히 출발선으로 들어왔다. 그가 차에서 내릴 때 장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3호차 엄태성, 합격입니다.”

 

   그날, 합격통지서를 받아 쥐고 나오는 그의 눈에 이슬이 맺혀있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Sabrina 2018.12.03 01:15 신고

에휴... 운전면허하면 저 수필보다 더 길 것 같네요.
힘들게 따놓고 제 때 갱신 안해서 다시 따야해요.
어차피 운전도 면허 딸 정도로만 준비해서 다시 연습해야겠지만요...

답글
  • wild rose 2018.12.03 03:04

    전 같은 동네에 사는 미국인과 결혼한 김언니라는 분이 도와주셔서 땄는데
    차 타고 나가자 마자 첨 드라이빙 중에 바로 필기를 보러 가자 하더라고요.
    다행히 휴스턴이란 도시가 커서인지 당시는 한국어 시험지가 있어서 아마 쉽게 땄을 겁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