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해 보니 오전 6시 45분이었다. 밤에 약하게 켜 놓는 복도 전등과 알람을 끄고 오랜만에 거실로 나가 블라인드를 열었더니 아침이 열리고 있었다.
날씨는 더워 보이지 않은데 골프장에는 골프를 즐기는 골퍼들은 보이지 않았다. 주일이라서? 날씨 때문에? 아니면 너무 일러서? 글쎄요?이다.
미이민 비자를 받은 후 뉴욕의 용커스에 있는 큰댁에서 4개월을 지내다가 휴스턴 도착해서 처음으로 산 가구가 뒤쪽 베란다에 놓여 있는 위 사진 속의 야외용 나무 테이블이다. 휴스턴 생활 막 시작했을 때 야외용 테이블을 실내에 들여놓고 부엌 식탁으로 몇 년을 사용하다가 나중에는 도매상에서 직원들 식탁으로 사용을 하다 보니 반질반질 윤이 났던 테이블이 지금은 바깥에서 제 기능을 다 못하고 비바람에 저절로 낡아진 흔적이 사진상으로도 느껴진다.
저 테이블 가격을 지금도 기억한다. 39불 99센트에 세금까지 43불 정도를 지불했을 것이다. 저 테이블을 살 때의 나의 심정은 미 이민 4개월 차인 울 가족의 장래가 심히 불안했을 때이었다. 과연 내가 미국에서 뭘 하며 살아야지 가족들 의식주 걱정이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가 당시 큰 숙제이었고 만약에 수중에 돈이 떨어지면 저 테이블을 부숴 땔감으로 사용해 몇 끼 밥은 해 먹을 수 있겠다는 그런 맘으로 저 아이템을 선택했던 기억이 난다.
오랜만에 거실로 나가 봤다. 거실이 현관으로부터 맨 마지막에 있는 집의 구조이다 보니 잘 안 가게 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들른 김에 사진을 찍으며 그곳을 대충 눈으로 다시 훑어보았다.
리빙룸 장식장에 머그, 종, 인형들이 보인다. 언제 저것들을 다 모았는지 이제는 기억도 아스레 하다. 선물 받은 것들도 있고 내가 타국이나 타지로 여행 갔을 때 기념으로 한두 개씩 사 온 것들이다.
베드 시트나 이불도 남편이 꺼내주면 난 그대로 덮고 잔 지가 두 번째 집으로 이사 온 후 24년 동안 계속이다. 시집갈 때 울 엄마는 딸들에게 이불 5채씩은 해 주신 걸로 안다. 거기다 시어른 이불까지 하노라면 딸들 4명에 출가시키느라 울 부모님 심신으로 또 경제적으로도 참으로 수고하셨다. 딸들도 그러할 진데 아들들은 또 얼마나 부모님에게 경제적 도움을 많이 받았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ㅜㅜ...
나 미 이민시 한정된 가방 사이즈에 담을 게 많다 보니 이불은 겨우 두 채를 가져왔다. 그중에서 한 채는 또 큰 시아주버님 내외께 선물로 드렸다.
그 후 이민 3-4년 차가 되었을 까? 우체부가 일요일인데도 배달을 해 준 커다란 패키지 안에는 이불이 3채나 들어 있었다. 그 이불 커버는 원래는 비단이었는데 울 엄마가 세탁하기 쉽고 바꿔 끼우기 좋은 면으로 커버를 새로 해서 보내신 것이다. 세상에나 ~ 얼마나 감사한 맘이 드는지~ 그때의 감사함이 지금도 새록새록 가슴에서 올라오는 중이다.
그 후 나는 목화솜이 가득 든 이불이 없으면 겨울에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애용하고 있다. 무겁고 따뜻해서 잠이 솔솔 온다. 울 아들은 여름에도 솜이불을 덮겠다고 고집을 하지만 아빠가 여름만큼은 가벼운 이불로 바꿔 준 것을 본다.
울 세 언니들은 십수 년 전에 셋째 언니의 권유로 솜틀집에서 리폼을 해서 가볍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울 큰언니가 후회를 하셨다. 아까운 솜이불을 가지고 괜한 짓을 했다고~ 울 엄마 말씀이 옛 어른들이 두터운 솜이불을 덮고 있노라면 전쟁통에 총알도 비켜 간다 했다면서~ 물론 언니도 나도 그 말의 깊은 뜻을 안다. 그만큼 실생활에 잠자리가 편안해야 함을 상기시켜 준 말씀이었을 것이다.
울 셋째 언니는 딸이 사는 동네로 4-5년 전에 이사를 갔는데 길 하나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아파트가 마주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딸이 가볍고 좋은 현대적인 이불을 사 준다며 엄마의 오래된 솜이불을 버려 버리라고 해서 쌈쌈을 하면서 겨우 솜이불을 간직했다며 자기도 한때 노환의 엄마를 돕는 다며 낡아 보이는 냄비며 그 밖의 것들을 엄마의 허락도 없이 다 버려 버렸고 당시 엄마의 역정이 섭섭했는데 한참 후 당시 엄마의 나이가 되어서야 새삼 엄마 맘을 헤아리게 되었다고 한다. ㅜㅜ...
어제 장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 남은 음식으로 오늘 식사 준비를 했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서 부엌으로 나가서 오징어로 숙회를 하고 아들이 좋아하는 얼큰 양념을 닭개장에 더 애드하고 몇 가지 찬을 해서 아들에게 차려 주었더니 잘 먹었다.
아들이 잡곡밥을 싫어하는 것 같아 미니 가마솥에 쌀밥을 한 컵만 해 주려고 했는데 잊고 있다가 나중에야 생각이 났다.
예전에는 시금치도 한 단을 사면 한꺼번에 다 해 놨는데 이제는 3-4등분으로 나눠서 해 먹는다. 신문지에 곱게 싸서 자주 오픈하지 않는 냉장고 2 안에 넣어 놓으면 꽤 오래간다. 잎사귀 몇 장으로 시금치 샐러드를 했다. 물에 식초를 한 방울 넣고 오래 담가서 흙을 떨어트린 후에 4-5번을 더 씻어서 한다. 샐러드는 이파리로만 하고 남은 것은 나물로 만들어 놨다.
매시감자가 먹고 싶어서 잔잔한 감자 4개를 잘게 썰어서 익혔다. 그리고 양념은 아들에게 부탁을 했다. 버터랑 우유도 넣지 싶은데 만약에 나에게 하라고 하면 난 다른 이의 레시피를 봐야 한다. 자주 안 하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식성도 변하는지 감자를 안 좋아했는데 미국에 와서 베이크 감자와 매시 감자는 나름 잘 먹고 있다. 옥수수 남은 것도 2개를 삶았더니 맛있다며 잘 먹었다. 모자가 양이 크지 않아서 아직도 두 쪽은 남아서 저녁에 먹으면 될 것 같다.
닭개장을 아들이 두 그릇이나 먹었다며 생각보다 맛있다고 한다.
난 부엌 뒷정리를 한 후에야 점심을 내 방에서 먹었다. 그래도 시간은 아직 오후 1시 정도이었다. 일이 더 없었는지 오늘 일요일은 점심식사가 빨리 끝난 편이다.
운동을 끝내고 오면서 타깃에 들러 도넛 반 더즌과 블루벨 아이스크림 그리고 저녁에 먹겠다며 피자 한 판을 아들이 사 왔다.
난 늦은 오후에 도넛 2피스를 먹었고 울 아들은 두 시간 정도 오수를 즐긴 후 피자를 궈서 먹었나 보다. 피자 4피스가 남았는데 피자는 1피스도 내 손으로는 안 먹고 싶은 음식이다. 대신에 닭개장에 밥 한 주걱 말아서 저녁 식사로 맛있게 먹었다. 냉동실에도 큰 피자가 3판이나 있던데 아들이 그런다. 냉동실 피자는 아빠가 착각하고 잘 못 사서 맛이 별로라고~
방금 남편에게 전화가 왔는데 어제는 내 바지를 사려고 호텔 주변의 상가를 둘러봤는데 역시 남대문 상가만 못하다고 했다. 안 사도 된다고 했더니 바지만큼은 한국 바지가 예쁘고 또 내 바지들이 낡아 보여서 새것이 필요하다며 남대문으로 가서 사겠다고~
남편의 오늘 계획은 호텔에서 조식 후에 큰언니댁에 가서 언니가 끓여 놓은 호박죽을 먹겠다고 한다. 아마도 울 남편이 어제 식당의 호박죽 사연을 언니께도 이야기를 했는지 언니가 부러 제부를 위해 호박죽을 끓이셨나 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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