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좋은 글들

생각하게 하는 시 몇 편

wild rose* 2022. 6. 12. 03:05

너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생각해 봐

우리가 사는 게 사막이고

내가 물 한 컵이었다면

네가 나를 버렸을 것 같아?

 

은희경/상속

 

 

봄날의 여러 저녁 무렵

나는 늘 외로웠으나

스쳐가는 그 고독을 기억하지 못하고

흩날리는 벚꽃 잎 사이로 걸어 들어가고는 하였다

내일은 아름다워서 더욱 위험하였다

방법이 없었다

라일락 꽃 향기가 밤에 더 짙어지는 이유를

모두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는 않았다

 

심재휘/봄밤

 

 

아무도 엿보지 않는데

그렇게나 많이 나를 증명할 필요가 있나

 

최문자/청춘

 

 

간지러웠지

해결할 순 없었지

나는 너보다 먼저 고요에 도착하기 때문

네가 시작될 때

나는 끝났기 때문

 

유계영/발가락들

 

 

인생을 알 건 모르건

외로움의 죄를 대신 져준다면

이제 그가 나의 종교가 될 거야

뼛속까지 살 속까지 들어갈 걸 그랬어

내가 찾는 신이 거기 있는지

천둥이 있는지 번개가 있는지 알고 싶어

보고 싶어

만나고 싶어

 

문정희/뼈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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