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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어하는 여자 - 박완서

wild rose* 2015. 2. 2. 10:06

 

내가 싫어하는 여자

 

                                                                                                                                        박완서

 

 나는 살림을 잘하는 여자를 좋아하지만 지나치게 잘하는 여자는 안 좋아한다. 이를테면 깨끗한 걸 너무 좋아해 쓸고 닦고 털고 닦고 온종일 그 짓만 하고, 밤엔 몸살을 앓는 여자를 보면 딱하다 못해 싫은 생각이 든다.


 앉은자리와 둘레가 깨끗하다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지만 깨끗한 게 지나치면 오히려 불안하다. 남이 불안할 만큼 비와 걸레를 들고 다니며 앉은자리에서 조금만 움직이면 그 자리를 훔치고 머리카락도 집어내고 하면 불안해서 그 집에서 쉴 마음이 안 난다. 집에 들어가면 내 집이건 남의 집이건 우선 몸과 마음이 편하고 싶다. 깨끗한 것도 좋지만 남이 불편하고 불안해할 만큼 깨끗한 것에만 상성인 여자는 딱 질색이다. 비질, 걸레질 따위가 더 여자의 보람이 될 수 있는 건 비질, 걸레질로 집안이 깨끗해지면 가족이나 방문객이 기분이 좋아지고 편해지기 때문일 게다. 그러니까 비질, 걸레질로도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일 게다. 그렇지 못한 비질, 걸레질은 마멸에 이바지할밖에 없는 그냥 비질, 걸레질일 수밖에 없으니 아무리 여자라도 뭐 섬길 게 없어서 허구한 날, 아니 일생 비질, 걸레질 따위나 섬기고 사느냐 말이다.


 또 내가 안 좋아하는 살림 잘하는 여자 중에 너무 알뜰한 여자가 있다. 한 푼에 바들바들 떨며 가계부에 흑자를 내고, 비밀스러운 자기의 예금 통장이 있고, 옷은 어느 시장이 싸고, 과일은 어디가 싸고, 생선은 어디가 싼가에 틀림이 없어 박식해서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하다못해 알사탕 한 봉지 안 사는 것까지도 좋다. 그런 여자를 보면 믿음직스럽고 의지하고 싶기도 하다. 내남없이 사람 사는 게 아슬아슬하고 곡예처럼 느껴져, 사는 데 무서움증을 느끼다가도 그런 여자를 보면 우리의 삶이 딛고 선 든든한 주춧돌같이 느껴져 안심스럽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어느 날 느닷없이 의기양양해지면서 제 자랑을 늘어놓는다.

"글쎄, 어젯밤에 내 가요 앞 구멍가게 집 설탕을 몽땅 도리 했다오, 구멍가게라면 비싸다고 두부 한 모 안 사던 여편네가 웬일이냐고요? 호호 모르는 소리 말아요. 때로는 구멍가게가 엄청나게 쌀 적도 있다고요. 글쎄 그 구멍가게 집 멍청이 영감이 밤에 갑자기 설탕값이 오십 퍼센트나 오른 것도 모르고 졸고 앉았길래 내가 시침 뚝 떼고 몽땅 사 버린 거라고요? 어때요? 내 수지 맞추는 솜씨가."
이렇게 되면 등골에 한기가 돌면서 그 여자가 싫어진다. 알뜰한 건 미덕이지만, 수단 방법 안 가리고 알뜰한 건 악덕에 속할 것 같다.


 전화나 서신으로 결혼의 청첩을 받고 축의금 때문에 안달을 떠는 여자는 참 귀엽다. 몇 백 원이라도 돈을 덜 들여 보려고 요리조리 궁리 끝에 귀여운 선물을 마련하는 여자는 더욱 귀엽다. 그러나 청첩장을 받고, 부잣집에서 온 거면 허둥지둥 분수에 넘치는 축의금을 마련하고, 권세 있는 집에서 온 거면 감지덕지 허공에다 대고 굽실대기까지 하며 더더욱 엄청난 축의금을 마련하고 가난한 집에서 온 거면 우선 "가정의례 준칙도 모르나, 요새 세상에 청첩장은 무슨 놈의 청첩장" 하고 눈살부터 찌푸리고 나서 갈까 말까를 망설이고 요행 갈까로 낙찰을 본 후에도 약소한 축의금을 그것도 발발 떨며 마련하는 여자는 참 보기 싫다. 여자들까지 부익부 빈익빈에 알뜰하게 이바지할게 뭐냐 말이다.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자기 남편 자랑을 하는 여자는 그래도 어느 만큼은 귀엽지만 자기 남편 얘기를 최고급의 존댓말을 써서 하는 여자는 싫다.

 "얘, 이거 우리 아빠가 미국 들어가 계실 때 부쳐 주신 거란다. 원체 눈이 높으셔서 물건 고르시는 데는 뭐 있으시다고. 요새 나와 계셔서 모시고 있으려니 옷 입는 것까지 신경이 써져서 큰 시집살이란다."

친정아버지 얘긴가 하면 그게 아니라 자기 남편 얘기다. 듣기 싫다 못해 구역질이 난다. 이런 여자일수록 꼭 미국이나 구라파로 들어간다 하고 한국으로 나온다고 한다. 어디가 외국이고 어디가 모국인지 얼떨떨해진다.


 낮에 한참 바쁜 시간에 대문을 흔들어 나가 보면 두어 명 혹은 서너 명의 복장도 단단한 여자들이 친한 친구처럼 반색을 하며 잠깐 시간을 내달린다. 어정쩡해하는 사이에 주인보다 먼저 안으로 들어서서는 예수를 믿으라고 권한다. 말세의 징후를 하나하나 열거하고 지금이 바로 그 말 센데 곧 심판의 날이 올 테고 예수를 믿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아 죽음도 고통도 없는 세상에 살게 되리란다. 죽은 후의 천당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서 곧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얄팍한 책을 내놓고 사라고 한다. 거기 모든 궁금증을 풀어 주는 해답이 있단다. 이런 여자들 끈덕지기가 보통 서적 외판원 뺨칠 정도다. 남의 시간 같은 건 아랑곳도 안 한다. 그런 여자들이야 영생을 누릴 테니 시간 같은 건 안 아깝겠지만 난 그렇지 못하기에 그런 여자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있는 시간을 참을 수 없다. 가만히 보면 그런 여자들은 매일 그러고 다니고 있으니 집안 꼴은 뭐가 될까 딱하기도 하다.


 난 불교고 예수교고 믿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광신자는 싫다. 무당집 단골보다 더 싫다. 그런데 무당집 단골 중에도 광신자 중에도 여자가 단연 많은 게 좀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