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좋은 글들

사랑의 실천자이신 김요석목사님을 소개합니다.(2)

wild rose* 2012. 1. 23. 14:28


4. 잊힌 사람들의 마을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 있다

이웃 동네에 살고 있는 한 가장이 우리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초신자였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직 잘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이웃 동네는 워낙 불교가 지배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교회에 다니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온 동네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이웃의 따가운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다.

어느 날 저녁 그 집 아버지가 나를 찾아왔다.
잔뜩 화가 나서 목에는 핏대가 서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습니까?" 나는 다그치듯 물었다.

 

"아니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제가 지금까지는 화가 나도 꾹 참았다고요.

예수 믿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옆집 그 인간은 해도 정말 너무 하지 뭡니까?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목사님은 그래도 목사님이니까 뭔가 답이 있지 않겠습니까?"

 

양씨는 숨을 가쁘게 쉬며 씩씩거렸다. 우선 그를 진정시키는 일이 급했다.
"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말씀해 보십시오."

양 씨는 깊이 숨을 몰아쉰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오후에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가 옆집 채소밭에 들어가서 그 집 채소를 몽땅 먹어치웠거든요.
그랬더니 옆집에서 손해배상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야 당연히 배상해야지요."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저도 손해는 배상해 주려고 했지요. 그런데 그 인간이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하지 뭡니까!"

 

"도대체 옆집 분이 원하는 게 뭔데요?"

 

"글세, 우리 어미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달라는 겁니다!"
양씨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무리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우에 화가 안나는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
양 씨는 씩씩거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옆집 사람은 형제님을 시험해 보려고 그러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은 형제님이 마구 흥분하고 화내기를 바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온 동네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려면 그가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주셔야 합니다.
큰 손해를 입게 되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더 많은 것으로 갚아주실 겁니다."

 

내 말이 초신자 양 씨에게 설득력이 있을까? 양 씨는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좋습니다. 어쨌든 저는 예수 믿는 사람이니까요.
아까는 정말 화가 났지만, 다 접어두고 하나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요." 그는 돌아갔다.

양 씨는 정말로 한 마디 불평 없이 돼지 다섯 마리를 전부 옆집에 주어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양 씨가 미친 거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양 씨를 비웃었지만, 그중에는 양 씨의 태도를 보고 사뭇 진지해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하는구나.'

그것은 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사건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뭇잎이 곱게 물들어가던 어느 가을날 밤, 양씨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목사님, 밤 늦게 죄송합니다.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전에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분했습니다.
그래서 옆집 사람이 한 짓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지 뭡니까?
글쎄 옆집 황소 일곱 마리가 우리 집 밭에서 실컷 뜯어먹고 있는 겁니다.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옆집 사람이 그걸 보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는지, 저한테 와서 난처한 얼굴로 이러는 겁니다.
'양 씨, 어떻게 배상해야 할까?'

 

처음 생각 같아서는 그 황소 일곱 마리를 냅다 끌어오고 싶었지요.
하지만 목사님께 먼저 여쭈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목사님, 이제 제가 이겼지요? 그렇지요? 돼지 다섯 마리에 황소 일곱 마리라니,
목사님 말씀대로 하나님은 정말 제가 잃은 것보다도 더 많이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양 씨의 얼굴은 커다란 이익을 얻게 되리라는 기대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형제님, 형제님은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앙갚음하려는 마음을 버리시고 그분에게 용서하는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형제님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양 씨의 얼굴이 갑자기 침울해졌다.

그는 올 때와는 달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맥 빠진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음 날 저녁, 양씨는 또 한 번 신이 나서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말씀이 또 맞았어요! 하나님이 정말 더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어제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옆집 사람에게 아무런 배상도 받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오늘 오후에 그 사람이 돼지 아흔 마리를 끌고 우리 집에 왔지 뭡니까?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돼지 전부 자네 껄세. 내가 자네 때문에 지난밤에 한숨도 못 잤어.
지난 일로 틀림없이 화가 잔뜩 났을 텐데 왜 내 황소를 달라고 하지 않느냐 말이야.
내가 그걸 생각하느라고 머리가 다 빠개지는 것 같아.
자, 자네 돼지가 낳은 새끼 열여덟 마리씩 다 합해서 아흔 마리 전부 데려왔으니 다 가져가게.
그리고 이제부터는 이웃끼리 잘 지내보세."

 

양 씨는 예기치 않은 이 이야기를 듣고 흥분해서 나한테 뛰어온 것이다.
"생각해 보세요. 별안간에 이렇게 많은 돼지를 되돌려 받은 것도 굉장하지만,
지금까지 옆집에서 그놈들 전부를 먹인 먹이를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이 제가 손해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셨지 뭡니까?
이제 저는 확실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이 뭔지 아십니까?"
좋아라 하던 양씨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마을 전체가 우리를 예수 믿는 사람으로 인정하게 된 겁니다.
이거야말로 하나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 아니겠습니까?"


5.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참사랑이란

문둥병은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쉰여섯 되신 그 아주머니에게도 문둥병이 재발했다.
몸과 얼굴이 부어오르고 양쪽 눈과 콧구멍에서 고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아예 그 집에 발길을 끊어버렸고,
나이 지긋한 교회 어른 한 분은 그 아주머니를 소록도로 다시 보내고자까지 했다.
게다가 소문은 꼬리를 물고 이웃 동네까지 퍼져나갔다.
심한 불안과 절망에 빠진 아주머니는 한꺼번에 많은 양의 약을 먹어버렸다.
차라리 죽어서라도 문둥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리어 위만 상해서 이제는 제대로 먹거나 마실 수도 없게 되었다.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두 주가 지나갔다.
내가 찾아갔을 때 아주머니는 아무런 기력 없이 누워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고는 간곡히 부탁하기 시작했다.

"목사님, 제발 저를 다시 소록도로 보내지 말아 주세요.
저는 두 번 다시 소록도에서 문둥병자로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럼요. 하지만 여기 그대로 계시려면 건강을 빨리 되찾으셔야 합니다.
아무 거라도 좀 잡수어 보세요!"

"먹을 수가 없어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부엌을 내다보니 아궁이 위에 생선찌개가 담긴 냄비가 있었다.
나는 숟가락으로 찌개를 떠서 맛을 보았다.
아주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할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가 병에 옮을 것을 겁내지 않고 자신의 숟가락을 쓰는 것에 깜짝 놀란 것이다.
나는 생선찌개를 가득 떠올린 숟가락을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맛 좀 보세요. 아주 맛있는데요!"

아주머니는 내가 건넨 국물을 꿀꺽 삼켰다.

'아주머니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드실 텐데...... 내가 함께 있으면 어떨까?'

나는 신중하게 생각해본 다음,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냄비가 텅 빌 때까지
아주머니와 함께 숟가락 하나로 번갈아가며 찌개를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 송씨 아주머니는 금세 잠이 들었다.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니 온통 고름 투성이어서 아주 끔찍해 보였다.
나는 수건으로 고름을 깨끗이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고름은 다시 흘러나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그 누런 액체를 비추었다. 고름이 마치 금처럼 반짝였다.

"자매님, 자매님 얼굴에 금이 정말 많기도 하네요!"

나는 크게 소리내어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주머니에게 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나는 그 동안 아주머니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나는 건강한 사람이고 아주머니는 문둥병자였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내게 잔잔한 웃음을 보내주었다.
내가 그 아주머니의 숟가락을 썼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머니에게 입맞춤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담이 무너졌다.
그때 나는 참사랑이란 바로 내가 그 사람의 자리로 옮겨가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그분과 똑같이 문둥병자가 되었던 것이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 감사했다.
아주머니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은 바로 나의 자리에 오셔서 나와 하나님의 사이를 막고 있던 담을 허물어 버리신 것이다.


6. 잊혀진 사람들의 마을 - 지체 높은 사람의 방문

어느 나른한 봄날 저녁에 군수가 나를 찾아왔다.
군수처럼 지체 높은 사람이 우리 마을에 찾아온 적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김 목사님이십니까? 지금에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사실은 우리 도지사 사모님께서 목사님을 꼭 만나고 싶어 하셔서 말입니다.
내일 시간을 내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게 지체 높은 분이 어디에서 내 말을 들었을까?

"혹시 다른 사람과 저를 혼동하신 것 아닙니까?"

나는 좀더 신중을 기하기 위해 되물었다. 그런데 군수는 영호에 살고 있는 내가 틀림없다고 말했다.

다음 날 급한 환자를 심방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군수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날짜를 낼모레로 연기할 수 없을까요? 그날은 시간을 낼 수 있겠는데요."

군수는 아주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느 누구도 군수에게 이렇게 말한 사람이 없었나 보다.

"음 목사님이 정 그러시다면 목사님의 대답을 그대로 전하지요."

다음날 아침 군수가 또 찾아왔다.

"내일 오후 두 시가 괜찮으시다면 기꺼이 오시겠답니다."


그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우리 마을 길에
무언가 덜거덕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점점 가깝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영호는 국도에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마을로 들어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르지 못한 들길을 통하는 것뿐이었다.

그 요란한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아보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때 저만치 한 무리의 일꾼들이 트럭과 불도져를 몰고 마을 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체 높은 사람이 방문할 들길에 자갈을 깔고 땅을 평평하게 고르기 위해서였다.

약속한 날 점심시간에 군수와 면장과 경찰서장이 공무원 몇 명을 거느리고 미리 왔다.
마을 분위기가 잔뜩 들떠 있었다.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실제로 본적이 지금껏 한 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정확하게 오후 두 시가 되자 도지사 부인이 도착했다.
부인은 스물다섯 명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왔다.
상류사회의 부인들이 가난한 우리 마을에 모두 모인 것이다.

물론 나도 긴장이 되었다. 도대체 우리 마을에는 왜 온 것일까?
도지사 부인은 서울에서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듣고,
문둥병자들의 교회를 섬기는 이 목사에게 호기심을 품게 되었다.
그 부인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부인은 그토록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만족할 수 없었다.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부인의 갈증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부인은 영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원했다.

"모두 교회로 가시지요. 이렇게 오셨으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시다!"

나는 그 사람들을 모두 교회로 안내했다.

도지사 부인이 이 특별 예배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찾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부인은 떠나기 전에 내게 물었다.

"목사님, 목사님께 필요한 것을 하나 해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떠나실 때 우리 마을 사람들과 악수를 해주시겠습니까?"

부인은 확실히 불쾌한 듯 했다.
그러나 자가용에 오르기 전에 어떤 할머니 한 분에게 재빨리 손을 내밀었다.
할머니에게는 분명히 큰 영광이었다. 할머니는 그 후로 계속해서 그 부인을 위해 기도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 지체 높은 부인이 손 씻을 물을 준비하기 위해
차들이 줄줄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 '지체 높은'분의 방문이 있은 후 우리 마을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국도와 연결되는 길에는 콘크리트가 깔렸고, 전화도 연결되었다.
그리고 두 주 후에는 내 책상 위에 전화가 놓이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날 아침, 낯익은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

"목사님, 목사님을 우리 집에서 모이는 성경공부 모임에 모시고 싶습니다. 와 주시겠습니까?"

나는 그 부인의 초대에 기꺼이 응했다. 그 부인은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우리에게서 찾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