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d rose*
2025. 4. 21. 13:14
아직 뉴욕 큰댁에서 생활을 할 때
큰 시아주버님 내외께서 퇴근 시
식품 재료를 사 오면
차고에서 바로 연결된 지하실 복도에 내려놓으시곤 했다.
시댁 지하 복도에는 세탁기와 건조대가 있었고
그 문을 열면 바로 지하실 파티룸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도어가 있었는데
밖에서 바로 파티룸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조이었다.
당시 파티룸에는 10학년이던 시조카가
그곳을 침실로 사용을 하고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곳에 당구대가 있었지 싶은데
기억이 가물해서
그게 어떤 운동 기구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튼 밥을 지으려다 보니 쌀이 필요해서
지하에서 이층 부엌으로 옮겨야 했는데
당시 내 기운으로는 쌀 1포대가 무거웠다.
그래서 양손으로 쌀 포대 양 귀퉁이로 잡고
몇 계단 오르고 다시 몇 계단 오르고 했지 싶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당시 대학 신입생이던 여 조카가
마침 집에 와 있길래
쌀 포대를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어머나! 무슨 가벼운 깃털 베개를 들듯이
너무나 가볍게 들어 올리는 것이다.
그래서 순간 참 기운도 세다라고 생각을 했다.
사실 그 조카와 나의 나의 차이가 7년 차이? 정도로
그렇게 크지 않았었다.
그 후 40년이 지난 후 난 그때 보다 나이도 훨 더 들었다.
미 이민 후 어떤 40년이 내 곁을 스쳐 지나갔는지는
나도 따로 기억을 해 봐야겠지만
비록 나이가 많이 들었다고는 해도
이제 쌀 1포대는 깃털 베개를 든 것만큼은 아니라도
쉽게 들 수가 있다.
울 아들이 하이라이스 콘도 25층에서 살 때
가끔씩 장을 봐주고 싶어서
식품을 사 갈 때 쌀 포대도 함께 있었다.
그때 내가 어깨에 쌀 포대를 척 메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엘베 안에서 만났던 외국인들이
뭐라 한 마디씩을 했었다.
그 내용까지는 생각이 안 나지만
자그마한 여자가 쌀포대를 어깨에 맨 것이
좀 특별해 보여서인지
시답잖은 일상 대화를 건네었던 것 같다.
사실 콘도가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좋은 것 같아도
장을 봐 서 가지고 올라가는 게 쉽지가 않았고
또 손님 초대할 때 주차를 아무 데나 할 수가 없어서
손님들 차는 발레파킹(valet parking)을 시키고 팁을 주던지
아니면 맨 꼭대기 차고까지 굽이굽이 올라가야 해서
많이 불편해서 아 역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직접 경험을 해 봐야 장단점을 알 수가 있겠구나 했었다.
그거에 비하면 주택은 차고에서 내려
바로 도어 하나만 열면 집 안으로 통하니
평상시 미처 못 느꼈던 편리함도 새삼 느끼곤 했다.
콘도에 사는 이들은 무거운 짐들을 옮길 때
필요한 카트도 각 개인이 장만을 하던지
콘도에서 공용으로 사용하는 카트를 빌리던지 해야 했다.
또 발레파킹도 다 해 주던 콘도이었지만
울 아들은 생전 발레를 맡기지 않았다고 했다.
차몰이들이 차를 너무 함부로 다룬다면서~
각 콘도당 1대의 주차자리는 따라왔는데
그것은 차고 빌딩 내 실내 공용 주차장이라
따로 벽이나 도어가 없었다.
차고 빌딩은 6-7층 정도이었고
각 층마다 6-7대 정도의 도어가 있는 개별 주차장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주차장은 콘도에 따라오는 게 아니라서
우리도 콘도 구입 후 몇 년 뒤에 3만 불을 주고
개인 주차장은 따로 구입을 해서
울 아들은 주차를 할 수 있는 자리가 두 개가 있었다.
그때 구입을 한 이유는 혹 결혼을 하게 되면
부부가 사용할 주차공간이
두 군데는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울 아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유럽 프라하에서 교수님을 따라가
여름학기 3개월 공부를 마치고
재판 합의 조정관 라이선스를 따온 온 아들을
아빠가 공항에서 바로 부모님 댁으로 싣고 와서
앞으로 결혼할 때까지는
부모님 댁에서 살아라 했던 것이다.
그랬던 데는 이유가 있었기에 아들도 쉽게 동의를 했다.
그 후 콘도는 근 5년 가까이 아들의 별채로 사용을 하다가
재산세가 년 7천 불 이상에
관리비가 기본으로 매 달 6백여 불 되었기에 팔았다.
그 콘도를 10년 넘게 가지고 살다가 팔고
세금, 부동산 중개인 비용 등등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우리가 콘도를 샀을 때 지불했던 그 금액이 딱 손에 떨어졌고
개인 주차장으로 지불했던 비용은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콘도 작품도 울 남편의 충동구매이었다.
그래도 뭐 울 아들이 그곳에 지내면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법대를 졸업해서 텍사스주 변호사 자격증도 땄고
또 울 아들 20대 라이프를 맘껏 즐겼으니 되었다.